"모비젠은 100년 갈 데이터 소프트웨어 기업입니다."

전 연구소장 김형근입니다.

저는 21년 4월 사지마비 사고 후 줄곧 병원에 묶여 있습니다. 어찌어찌하여 아직 휴직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적이라도 일어나 회사에 복귀하라는 뜻으로 읽힙니다만.

누구나 떠납니다. 모비젠이라는 기업은 100년도 넘게 갈 것이니, 대표이사를 포함해 지금 재직중인 모든 임직원들은 결국 모비젠을 퇴직할 날이 틀림없이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누군가는 정년으로, 누군가는 이직으로, 어쩌면 누군가는 정리해고로 결국 떠나겠지만, 모비젠은 여전히 남아서 제 갈 길을 갈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살아남는 것'을 추구했습니다. 생존은 생명의 근본이라 믿었습니다. 내가 영원히 살 수 없으니 뭔가 나보다 더 오래 살아남을 것을 찾아야 했습니다. 후손을 낳아서라도 자연이 부여한 종족보존이라는 미션을 수행하는 것이 한가지 방법이겠고, 다행히도 아들 하나를 낳아 수십억년동안 끊어지지 않고 이어온 그 장구한 생존의 고리를 연결하는 데에는 무사히 성공했습니다. 다만, 아메바도 하고 박테리아도 다 하는 번식하나 했다고 뭐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내가 오래 남길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베토벤도 아니라 악보를 남길 수도 없고... 이것저것 시도해봤으나 다들 시시하고 허망한 것들이었습니다.

어느날, 깨어있는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쏟아붓는 회사, 모비젠이 그것이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로는 가끔씩 "장수기업"이라는 키워드로 검색도 해보고, 기업은 사람과 달리 100년을 훌쩍 넘어 수백년, 심지어 천년을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일본에는 백년 넘는 장수기업이 3천개, 독일에는 1천5백개가 넘습니다. 독일의 광학기업인 칼자이쯔는 2차세계대전 후 독일 분단으로 회사도 둘로 쪼개졌다가 독일이 통일되자 몇년후 회사도 통일되었습니다.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후 줄곧 "내가 떠나도 모비젠이 훨씬 오래 살아남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가 회사생활의 기준이었습니다. 불편하고 힘들어도 지속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쪽으로 선택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모비젠에 오래 살아남는 유전자가 새겨지도록 '나름' 개입을 했습니다.

전임 이명규 사장님은 그걸 "계속기업"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망하던 지인 사장들을 보며, 모비젠이 망하면 어쩌나 하는 근심에 싸여 밤잠을 설치던 양반이었습니다. 이명규 사장님은 계속기업으로 가지 못하고 망하게 하는 주범으로 두가지를 꼽았습니다. 재무회계 부정과 보안사고입니다. 사장은 재무의 정점에 있으므로, 심지어 사장조차도 감시되고 통제되게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사장인 자신 조차도 회삿돈을 함부로 손대지 못하게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힘썼습니다. 또한, "개발에 실패하는 것은 용서가 되어도 보안에 실패하는 것은 용서가 안된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수 많은 대규모 정보를 다루는 빅데이터 회사로서 모비젠이 보안에 털리는 것은 도저히 감당안되는 심각한 사고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가는 기업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크고 돈 잘 번다고 능사는 아닌 것 같습니다. 들불처럼 커나가다도 한순간에 꺼져버린 기업들이 수두룩하잖아요. 모비젠이 구글보다 클 수는 없어도 구글보다 오래갈 수는 있습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아니까요.

물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은 모나지 않고, 어느 그릇에도 잘 담기며, 장애물을 만나도 싸우지 않고 휘돌아 가며,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향하여, 결국엔 바다에 도달하고야 말죠. 모비젠이 그런 기업이길 바랬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上善若水가 내 블로그 명이었습니다.

두뇌와 같은 경영진 뿐만 아니라, 눈과 같은 마케팅도, 심장과 같은 영업도, 근육과 같은 연구개발도, 뼈대와 같은 재무회계도, 피부와 같은 보안도 모두가 제역할을 해야하고, 무엇보다도 혈액과 같은 현금흐름이 원활해야 건강하게 꾸준히 성장하면서 오래가는 기업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좀 불편해도 잘못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이 덮으려다 화를 키우는 것보다 좋습니다. 오래가다 보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 지 모릅니다. 백년이면 전쟁도 겪을 것이고 심지어 국가도 망하고 새 나라로 바뀔 수 있습니다. 격변의 시기에도 헤쳐나가려면 숨기는 게 별로 없어야 합니다. 되도록이면 명시적인 기준과 방침을 정하고 그걸 따라야 임기응변이나 누군가의 사리사욕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비젠은 대내적으로든 대외적으로든 투명한 회사이길 바랍니다.

책임지는 것도 오래가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기술된 스펙만 만족하면 소프트웨어 개발을 완료했으니 책임을 다했다고 말하는 회사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 모비젠에서 말하는 책임은 그런 게 아닙니다. 그 후에 고객들이 모비젠의 제품과 서비스를 만족하게 사용하고, 그것을 통해서, 고객이 지불한 가격 이상의 가치를 얻어갈 때, 비로소 모비젠은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고객이 모비젠을 믿어주고 오래 같이할 것입니다.

모비젠이 어떠한 사람을 원하는가를 명확히 하기 위해, 경영진의 의견을 모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 결과로 모비젠 인재상을 작성해 홈페이지에 게재를 했습니다. "책임감, 실행력, 의사소통, 사고력, 실용적"이 그것입니다. 이 다섯가지 중 '책임감'이 다들 동의하는 으뜸이고 나머지는 거들 뿐입니다. 예의바르고 단정하거나, 외모가 뛰어나거나, 똑똑하고 창의적이거나, 진취적이고 추진력있는 사람이 모비젠에 필요없는 것은 아니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책임감있게 해내는 사람이 모비젠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인재입니다.

앞으로 AI가 쓰나미처럼 몰려와 미래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미래는 상상하기 어려우니 과거로 상상해 봅시다. 장수기업이 많다는 일본, 15세기의 전국시대에 카타나 검을 잘 만들던 어느 제작소를 상상해 봅시다. 몇백년 후 현대적인 군수업체가 되어 로켓이나 잠수함을 공급하고 정보수집 서비스도 제공하며 군용식량도 보급하는 종합적으로 전쟁을 이기게 해주는 기업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몇백년 후에 부엌칼을 포함해 초정밀 레이저칼, 초강력 물칼을 포함해 온갖 종류의 절삭 도구를 제공하는 기업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철로 된 검의 물성에 매달리지 않고, '이기게 해주는 것'이나 '절삭한다는 것'과 같이 세상이 변해도 항상 필요로 하는 본질적인 고객의 요구에 집중하면 오래갈 수 있습니다.

모비젠은 압도적으로 쏟아지는 데이터를 헤쳐서, 있을 지 없을 지도 모르는 유용한 정보를 찾아내서, 그걸 업무 담당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게 절실히 필요하다는 자각에서 출발했습니다. 아무리 AI가 세상을 뒤바꿔놔도, 데이터를 들여다 볼 필요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끝간데 없이 광활한 데이터를 전체적으로 폭넓게 들여다보는 고성능 망원경같은 소프트웨어, 필요하다면 데이터 낱낱을 미세하게 분해해 볼 수 있는 현미경같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야 합니다. 독일의 칼자이쯔가 휴대폰 렌즈, 현미경 렌즈, 우주망원경 렌즈, 반도체 EUV에 들어가는 초정밀 렌즈까지 만들면서 장수기업이 되어가듯, 모비젠도 초정밀 데이터 렌즈를 장착한 현미경, 고성능 정보 센서를 장착한 천리안 망원경을 만들어가며 장수기업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말이 길어졌네요. 남아있는 여러분이 한사람 한사람 모두 오래가는 모비젠이 되도록 힘써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주)

[연구소장기고 #9] 모비젠에서 인상적인 장면 세가지
https://mobigen.tistory.com/m/389

[연구소장기고 #9] 모비젠에서 인상적인 장면 세가지

지란지교 오치영 대표님이, 자신의 블로그(ODO Bang)에 게재할 글을 요청하셔서 적어본 글입니다. -- 제목: 모비젠에서 인상적인 장면 세가지 모비젠 연구소장 김형근입니다. 저는 미래만 생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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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전 만든 모비젠 회사소개 동영상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https://youtu.be/c-yDStYuz-k?si=aWZHXxQ4SZIGfyQa